반지.

원형을 유지하는 선물은 ‘영원’을 상징하는 거라, 함부로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다. 그래서였나? 몇 번의 연애에서 한번도 쉽사리 커플링을 해보지 못 했다.

평생을 거추장스러운 장식물 없이 자유롭게 살아온 내 왼손 약지에 은색 반지가 끼워졌다. 내가 원해서 낀 반지이다.

많이 어색하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때든,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낼 때든, 서류를 볼 때든, 손까락이 움직일 때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듯이 딱딱한 느낌을 내게 건넨다.


어색하지만, 재미있다.

왜 연인들이 반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에 대한 애정, 믿음, 책임 등의 의미를 지우는지 알 것 같다. 아주 신기한 경험이다.

내게 끼워진 반지는 그 어색한 감촉을 느끼게 할 때마다,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이제 당신은 길에서 미니스커트에 가슴 파인 옷을 입은 여자가 지나간다고 멍하니 바라보면 안 되요”
“이제 당신은 주변 여자들에게 함부로 과도한 친절을 베풀어서는 안 되요”
“이제 당신은 마냥 친구들이 좋다고, 술 많이 마시고 늦게 집에 들어가서는 안 되요”

물론, 안 된다는 말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항상 누군가가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고, 건강 챙겨요”
“바빠도 틈내서 그녀에게 연락주세요. 그녀도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당신은 누군가에게는 제일 멋진 사람이잖아요”


사실, 반지가 무슨 말을 하겠냐? 모든 것은 다 사람이 의미를 붙이기 나름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시인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꽃은 ‘꽃’이라 불리는 순간 ‘꽃’이 된다고.
반지도 내가 이렇게 의미를 붙이고, 내 행동을 정돈하거나, 내 기분을 좋게 하는데 계기로 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유쾌한 것을… ㅎㅎㅎ
남들은 속박의 상징이다. 자유를 잃은 것이다 말하지만, 뭐 어떤가.
이것은 이것 나름대로 아주 유쾌한 경험이다. 어색하고, 이상하지만, 내가 그렇게 의미를 붙이기 시작한 이상, 아주 즐겁게 끼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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